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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사람이 손을 쓸 수 없다면 어땠을까. 팔에 손 대신 날개가 달려있었다면 모든 게 달라지지 않았을까?

작은 날개를 퍼득이는 새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깃털 속에, 조금 다른 형태로 자리잡은 손가락. 그 손가락을 마주잡을 수는 없지만, 그 날개를 가득 품을 수는 있을 것이다. 가닥으로 뻗은 손가락으로 그 깃털을 어루만졌을 것이다.

모피를 뒤집어 쓴, 그 가죽을 꽉 잡고 있는 손가락. 잠을 자고 있을 때 살짝 내려놓은, 자국이 잔뜩 남은 손바닥. 고리 같은 것을 끼웠음에도 힘을 주어 쥐고 있었던 손.

그 옆에서 같이 잠들어 있는, 새근 옅게 소리를 내고 있는 사람. 무릎 위에 놓여있는 하얀 손을 잡자, 감겨있던 눈꺼풀 사이로 하늘빛 눈이 드러난다.

“갈 시간이야.”

어느 날 꾸었던 꿈이었을까?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로 평온했던 때였다. 다시는 느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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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고 있던 종이가 갑자기 붉어졌다. 손을 떼면 가운뎃손가락에서 한 줄, 피가 나오고 있었다. 그 베인 상처를 보고 나서야 손가락이 욱신거리는 것을 느낀다. 베인 지 조금도 안 된 것 같았다. 반창고가 가방에 남아있던가. 이따금 손가락을 다치는 횟수가 늘었다. 날카로운 것에 찔리거나 베이거나 한 상처들이 손 곳곳에 남아있었다. 예전에 붙여둔 반창고를 떼기도 전에, 다시 반창고를 감으면서, 이상하도록 그렇게 상처를 가리고 나면 그 부분이 전혀 아프지 않는 걸, 매번 느낀다.

피가 묻은 부분을 포스트잇으로 가리고 나서는, 다시 방금과 똑같은. 손가락에 덕지덕지 무언가를 붙이고 감아도, 손을 움직이거나 하는 건 별 지장이 없으니까,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물이 묻을 때나 떼어져 다시 붙여야할 때가 아니라면. 먼지가 쌓여 붙어있지 않는 반창고를 뗄 때 보이는 하얗게 질린 살갗과, 그 사이에 아물지 않은 상처를 본다면, 다시 처음 상처가 났을 때 느꼈던 기분이 다시 살아났다. 따갑고 기분 나쁜, 반창고에 붙은 접착제의 끈적거림 같은.

그렇다 하더라도 조금 지나면 낫는 거니까, 신경 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손가락이 욱신거렸다. 그 강도가 다른 때보다 셌기에 혹시나 손가락이 부러지거나 한 건 아닌지 걱정했건만, 역시나 그랬다. 이전에 손가락을 부러질만한 짓을 했는지 기억나지는 않았지만, 아팠던 건 어제쯤이었으니 다친 것도 그때쯤이었겠지. 하필이면 왜 왼손 검지일까. 몇 주 있으면 다시 나을 거라고는 했지만, 당장 연습 같은 건 못 하게 생겼으니 그건 그것대로 걱정이었다. 당장은 쉬는 것이 맞겠지. 다 낫는 동안에는 부활동은 하지 않던가, 조금만 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에게 조금 미안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들은 소리는 나을 때까지는 악기를 연주하지 말라는, 당연한 말이었다. 맞는 말이지만, 정말로 견딜 수 없을 때가 찾아오기 마련이다. 물론 이전에 겪은 적은 없지만, 오늘에서야 갑자기 그런 기분이 들었다. 무언가 손에 잡으면 안 될 것 같은 강박 같은. 다친 손가락을 쓰지 않고 만지는, 그런 식으로 계속, 해보고 싶기도 했다.

별 거 아니었지만, 왜 이렇게 신경이 그 쪽으로 향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아픈 손가락이 조금씩 떨려 왔다.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시간이 정말로 느리게, 아주 느리게 흘렀다. 프렛을 누르지만 제대로 운지가 잡히지 않는다. 차라리 엄지가 다쳤더라면 이렇게나 불편하지는 않았을텐데. 괜한 자존심 때문인지 점점 손가락을 세게 누르고 있기는 하지만, 한 손가락을 쓰지 않고 하기는 여전히 힘들었다. 분명 검지를 쓰지 않고도 제대로 잡을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그것까지 생각할 정도로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떠올릴 수 있었다면 이러지도 않았겠지만.

포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방을 나왔고, 물어본다면 그때나 말할 작정이었다. 답답함이 다른 느낌보다 먼저 목으로 나왔다. 그냥 나을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그러지 못할 거라는 건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단지 연습 때문은 아니었다. 연습을 하지 못하는 건 그렇게 문제가 아니겠지만, 그래도 그것이 계속 신경이 쓰이는 건, 의식하지 않는다고 해서 되는 개 아니었다. 손가락 하나가 이렇게 머리를 휘저을 줄이야.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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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빨리 가 보세요. 나머지는 제가 하면 되니까요.”

그 말을 하면서, 뒷말은 내가 항상 했던 말이라고 덧붙였다. 오늘은 오랜만에 문을 잠그는 일을 하지 않게 될 것 같다. 처음에는 만류했지만 어쩌다보니 억지로 떠밀려 가는 것이나 다름 없게 되었다. 이번에는 자신의 차례라고 말하는 건, 이제까지는 내가 그 말과 행동을 했다는 표시였을까.

“소라 상, 손 빨리 나아요.”

“아, 고마워.”

언제쯤 나을까? 깊지 않지만, 그렇게나 짧은 시간 동안에 손가락을 공격하고 도망가버린 상처들이 아프지는 않지만 조금씩 찔리고, 베인 상황들을 떠올리게 한다. 조심해. 언제나 신경 쓰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나의 손이 아니었던 것 같다.

 

복도를 걷다가 음악실 앞에서 야마토를 보았다. 야마토는 문 사이를 기웃거렸다. 평소에는 굳게 닫혀 있었지만 지금은 슬쩍 열려 있었다.

“끝난 거야?”

“엣, 소라? 이 시간에는 어쩐 일이야?”

“어쩌다보니. 좀 빨리 끝났어. 야마토는?”

“음, 나도 뭐, 끝났다고 해야 할까”

이 시간대에는 마주친 건 처음이었다. 서로 다른 일을 하느라 바쁘니, 학교에서 마주치는 때는 등교 때나, 그 밖이 아니면 힘들었다. 우연 치고는, 마치 언젠가 약속이라도 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손가락은 다친 거야?”

“어, 응. 부러젔다고 그러네. 뭐, 걱정할 필요는 없어, 몇주 뒤면 낫는다고 하니까.”

야마토의 손가락 하나가 감겨있었다. 왼손. 오른손이 아니어서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등에 메고 있는 케이스 때문에, 그게 그렇게 다행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을 바꾸었지만.

“근데 너,” 야마토는 내 손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손에 반창고가 늘어났어.”

“응, 조금 다쳐서.”

“요즘 너무 많이 다치는 거 아니야? 반창고로 아예 덮혔는데.”

“다친 지는 조금 되었는데, 잘 안 낫더라고. 걱정 하지는 마.”

서로 시선이 손가락에 머물고 있었다. 똑같이 다친 손가락이었고, 정도만 조금 차이가 있었을 뿐이었다.

“근데 음악실은 어떤 일로?”

“그냥, 열려있길래. 피아노도 보여서. 한번 쳐 보고 싶었거든.”

문틈 사이로 조금 오래되어 보이는 피아노가 보였다. 넓은 방 구석에 조그맣게 자리잡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안에 있는 물건들 중에서 가장 눈에 띄었다.

음악실에서 피아노 소리를 들은 것도 꽤 오래 전이었다. 언젠가 몰래 들어가 피아노를 연주하고 나오는 아이를 문 앞에서 마주쳤다. 여러 번, 항상 같은 아이였다. 매번 같은 시간에 음악실에서 여러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았다.

어느날에 그 아이는 문도 닫지 않은 채 연주에 열중하고 있었다. 나도, 항상 그 아이를 마주치던 시간보다 빨리 그곳에 도착했고 그 아이가 혼자만 즐겨왔었던 소리를 마주할 수 있었다. 그날 이후로는, 무슨 이유인지 그 시간에, 음악실에서 나오는 그 아이를 볼 수 없었다. 그 아이가 누구였는지 지금도 알 수 없지만, 그 소리만큼은 기억 한 편에 조그맣게 자리잡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모르는 거야?”

“응, 꽤 오래 전 일이라서. 한 소학교 때?”

“그때라면, 그 아이도 널 모르고 있을 것 같은데.”

“그러겠지? 보자마자 도망쳐 버렸으니까.”

야마토는 살짝 웃음을 지으면서, 문을 열고 그 앞자리에 케이스를 내려놓았다. 음악실 안은 밝지도 어둡지도 않았다. 해가 사그라들 시간이어서, 조금 붉어진 빛이 창문 사이로 새어 나왔다.

“나도 하모니카를 시도 때도 없이 불었었는데.”

“누가 자고 있는 옆에서?”

“윽, 그렇게까지는 아니었어. 정말 복잡할 때는 그랬지만.”

“장난이야. 옛날에, 잠결에 옆에서 들었던 것 같아서.”

옛날에 떠났던 모험. 아마 그때였을 것이다. 하모니카로 불던 어떤 선율. 이름은 모르지만 조금 슬펐던 노래였다. 그걸 언제 처음 들었는지는 짚어보지는 않았지만, 언제 돌아갈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었던 때, 잠에 들던 그 사이에 들었던 멜로디가 떠올랐다.

“피아노 쳐본 적 있어?”

“아니, 옆에서 연주하는 걸 본 적은 있지만,” 뚜껑을 열자 건반이 보였다. 자주 사용하지는 않았는지 먼지가 조금 끼어있었다.

“지금 만져보는 건 처음이야.” 야마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야마토는 의자를 오른쪽으로 비껴 앉았다. 손으로 건반을 이리저리 누르면서, 나오는 음을 듣고 있었다.

“감은 오는데 어떻게 쳐야할 지는 잘 모르겠다.”

가만히 서서 바라보다가 문득 의자 빈 곳에 앉았다. 약간은 삐걱거리는, 그렇지만 둘이 앉기에는 충분했다. 세 개, 네 개로 나눠진 하얀 건반부터 차례대로. 배운 적은 있지만 실제로 써보지는 못했던 것들이었다.

“이거부터, 도, 레, 미 파. 맞지?”

“응, 하얀 게 차례대로 가고, 검은 게 반음이네.”

“으음… 알 것 같아?”

“어, 조금은. 의외로 꽤 어렵네.”

야마토가 누르는 손을 따라 건반을 누르면 높이만 다른, 같은 음이 나온다. 다른 음이지만 같이 들리면 짝을 이루기도 하고, 어떤 음들은 서로 기분 나쁜 소리를 내기도 하였다. 귀로만 느꼈던 것을 손끝으로 느껴보니, 더 가깝게 느낌이 전해졌다.

“소라, 왼손 좀 빌려줄 수 있어?”

“내가 왼손이 이래서, 힘들 것 같아서.”

“응, 알았어. 어떻게 하면 되?”

“처음에는 이렇게, 그 다음은 이렇게 눌러주면 되.”

“잘 못할 것 같은데 괜찮을까?”

“괜찮아. 나도 못하는 건 마찬가지니까.”

그러고나서 야마토가 누르는 음은 정말로 익숙한 멜로디었다.

“이거, 문이지?”

“맞아, 생각나는 멜로디가 이거라서.”

그런 식으로 생각나는 멜로디를 계속, 손가락으로 누르고 있었다. 처음에는 짚어주는 데로 건반을 눌렀지만 금방 건반에서 나오는 음에 익숙해졌다. 이것을 누르면 이런 음이 나오는구나. 꽤 신기했다.

서로, 한 손으로만 연주하는 건 힘들었다. 처음이었고, 원래 두 손으로 연주하는 것일텐데, 한 손으로 치는 시도는 당연히 어려운 일일 것이다.

다만 왼손 부분을 칠 때, 다섯 손가락을 모두 써도 되는 건 아니었다.

“자, 그러면…”

말이 끊겼다. 야마토는 그 다음에 할 말을 찾고 있는 것 같았다. 어색한 기운. 마땅히 무언가를 이어갈 것을 발견하지 못할 때 찾아오는 이상한 흐름. 노력했지만 나도 머리에서 떠오른 것이 없었다.

“어떻게 할까?”

제대로 된 질문은 아니었다. 정적을 깨기 위한 망치질.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다음 말을 꺼내지 못한다. 멍해져, 바로 눈 앞에 있는 것조차 흐릿하게 보였다. 검고 흰 바탕 위에 올려진 손가락들. 한 사람의 왼손과 다른 한 사람의 오른손. 그런 눈 앞에 낀 안개를 흘러내리게 했던 건 무의식적으로 누른 건반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의자를 누르고 있는 손을 포갰다. 부러진 검지가 느껴졌다. 다친 한 손가락 때문에 멀쩡한 다른 손가락을 쓰지 않는 건, 많이 손해이지 않을까, 이제야 느꼈다.

길게 흐르는 음에서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잠시 스쳐지나가 깊게 남지 않았지만, 야마토에게 도움이 될 지도 모르는 무언가였다.

“피아노는 아홉 손가락으로도 칠 수 있을 것 같아.”

“확실히, 그렇네. 손가락을 다 쓰지 않아도 되니까.”

“그러면 나을 때까지 조금 연습해 볼래? 그러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어?”

“재활, 이라고 해야하나? 그래도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까 다른 방법으로 손가락을 쓰면 될 것 같아.”

“사실 정말 재활은 손가락을 쓰지 않는 것이겠지만, 배워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으니까… 그래 볼까?”

야마토는 전보다 자신감이 붙은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살짝 나타나는 표정이 좋았다. 약간 가라앉은 표정을 짓다가도, 가끔은 해맑은 모습을 보여줄 때도 있었다.

“사실은 좀 답답했는데. 고마워.”

“에, 정말 그게 고민이었던 거야? 몰랐었는데.”

“그래? 뭐 어때. 원래 우린, 이런 거 잘 안 말하잖아.”

“……잘 모르겠어.”

“나도. 그냥 그런 것 같다고 느꼈어.”

말이 끝나고 나서 눈이 마주쳤을 때, 이상한 마음에 서로 웃을 수 밖에 없었다.

그 때 눈 앞에 무언가가 보였던 것 같았다. 어떤 감정에 푹 빠졌을 때 보이는 미래 같이. 그 앞에 스쳤던 건 창문 앞으로 잠깐 지나간 햇살이라 생각했다.

“조금만 더 있을 건데, 너는?”

“시간이 많이 생겼으니까. 같이 있을게.”

잠깐 열려있는 문을 보고 문을 닫을 때?뒤돌아보는 야마토와 눈이 마주쳤다. 의자에 꼭 붙어있었던 왼손이 건반 위에 있는 걸 보았다. 문을 닫고 잠시 기대었다. 눈을 감으면 앞에서 소리가 들렸다. 두 손을 잡으면 따뜻하지 않은, 반창고만 만져지지만, 조금만 지나면 다 떼어버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야마토보다는 빠르게 손가락이 낫겠지만, 그래도 서로, 조금씩만 더 빠르게 나아지고 있다면 더 좋지 않을까.

한참동안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건, 지금까지 들었던 소리 중에서 가장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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