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라. 잘 있어?
일본에서 비행기를 탄지 꽤 오래 지난 것 같은데, 별로 시간이 지나지 않았더라고.
훈련은 내일부터 시작이야. 오늘은 그냥 짐 풀고, 간단한 주의사항 안내받는 것 정도. 숙소가 되게 잘 되어 있어. 방 별로 디지몬들을 위한 시설이 되어있어. 활성화 될 건 내 방밖에는 없지만. 그리고 방 마다 컴퓨터도 있어. 메일 보내기에는 좋을 것 같아. 손편지를 쓰고 싶은데, 이 근처에 문구점이나 우체국이 있나 모르겠어. 내일부터는 훈련이니까 시간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중에라도 여유가 생기면 이 근처를 돌아볼 생각이야. 왜 지금 돌아보러 나가지 않았냐고 하면, 빨리 메일 보내고 싶어서 그랬지 뭐.
시차는, 생각보다 잘 적응했어. 아무래도 일본에서부터 준비를 했었으니까. 음식도 잘 맞는 것 같아. 아무래도 식단이 짜여서 나오는데, 맛은 있지만 말이야. 가끔은 인스턴트 음식 같은 것도 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아마 아버지한테 연락 안했다고 뭐라고 하겠지? 걱정 마. 짐 풀자마자 전화 했어. 일본은 밤 늦은 시간일 텐데, 전화를 받더라고. 오늘도 야근인가 봐. 밥 제대로 챙겨줄 사람도 없을 테니까 이제, 반찬이랑 이것저것 해서 냉장고에 넣어두고 왔는데. 그마저도 바빠서 잘 챙겨먹으려나 모르겠어. 인스턴트 밥도 여러 개 사 두긴 했는데. 데우기만 하면 되는 걸 설마 그것도 안 먹진 않겠지?
아, 젠장. 왜 아버지 이야기로 새는 거야. 마우스로 아버지 이야기 부분을 통째로 드래그 하더니, 그대로 백스페이스를 누른다. 아니 그치만, 소라는 분명 소라는 여기까지 걱정할 거라고. 음식은 입에 잘 맞는지, 몸은 괜찮은지. 하나하나 사소한 것 까지 걱정할 아이다. 남을 챙겨주는 것이 천성인 아이니까. 그러니까 아버지 얘기는 그냥 두는 게 낫겠지? 왼 손 약지와 검지로 ctrl+z를 누르면서, 손편지를 쓰는 중이 아니라는 것이 새삼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똑같은 내용을 다시 써야 한다니. 지우고 다시 쓰고 하면 편지지도 지저분해질 거라고. 예쁜 편지지에다가 줘야 할 텐데. 그렇지만 그거랑 상관없이 소라는 손편지를 더 좋아할 거라는 막연한 생각에, 당장 메일을 다 쓰고 나서라도 밖으로 나가 편지지를 사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예쁜 것만 주고 싶어서.
가부몬은 지금 같이 없어. 나사에서 이번에 파트너 디지몬을 위한 공간을 제작했는데, 아까 방에 있다고 했었잖아. 그런데 이게 아직 제대로 시행된 적이 없어서 가부몬이 직접 공간 안에서 생활해봤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 아, 물론 이 공간이 제작된 건 나 때문이야. 비행사 훈련생들 중에서 파트너 디지몬이 있는 사람은 내가 최초니까. 가부몬은 중앙 관리실에서 연구원들이랑 이야기하는 중. 나도 방에 짐 풀기 전까지 같이 있었는데, 시스템이 잘 되어 있더라고.
그래서 내가 짐 푸는 시간이 한참 늦어지긴 했지만, 이라는 사실은, 쓰지 않는다.
메일을 다 쓰면 다시 가부몬에게 가 볼 거야. 아무튼, 미래에 파트너 디지몬과 함께하는 우주비행사들이 생겨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투자를 많이 한 것 같더라고. 나중에 사진 찍어서 보내줄게. 피요몬, 아마 엄청 좋아할걸.
피요몬도 같이.
정말로, 훈련만 아니라면 당장이라도 비행기 표를 보내서 소라도 이쪽으로 오라고 하고 싶은데. 아니, 다 던지고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소라가 없는 자리가 이렇게 크게 느껴질 줄은 몰랐는데.
정말로, 훈련만 아니었으면 널 여기로 데려왔을 거야. 이렇게나 좋은 곳에 나 혼자만 있기도 아쉽고, 너 없이 혼자 있으려니까 왜 이렇게 허전한지 모르겠어. 아 물론, 가부몬이 함께 있으니까 혼자는 아니지만 말이야. 그러니까 내 말은,
……이런 말을 쓴 걸 타이치나 다른 녀석들이 알았다간 평생 술자리 안줏거리가 될 거다. 나 참, 하고 싶은 말 쓰겠다는데 왜 자기들이 더 난리인지. 내가 소라랑 연애하지, 자기들이 하냐고.
턱을 괴고는 한참을 모니터만 바라보던 야마토는, 고민 가득한 표정으로 백스페이스를 열 번, 조금 신경질적으로 누른다. 정말, 더럽게 안 써진다. 글 쓴다고 받은 스트레스를 푼다고 매일같이 매운 카레를 해달라고 했던 타케루를,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
어릴 때부터 혼자 지내는 건 익숙해져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또 혼자 있으려니까 괜히 심란해져서 하는 소리야. 그만큼 소라 네가, 나한테 큰 존재로 다가왔다는 거겠지 진심이야. 소라 넌, 어쩌면 나한테 가족 이상의 존재니까.
아버지와 단 둘이 살기 시작한 후로, 오랜 시간을 혼자서 지내왔다. 아버지와 둘이서, 때로는 혼자서.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것을 낯설하던 내게, 사랑이 무엇인지 알려준 너란 사람. 단순이 남녀 간의 사랑뿐만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랑, 애정.
익숙해져 있었다고 해도, 자신의 마음 깊숙한 곳, 어딘가에서는 여전히 누군가의 정을 바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저에게 그 정을 준 것은 그 날의, 혹은 그 이전부터의 소라.
내일부터는 엄청 바빠질거야. 그래서 메일을 이렇게 여유롭게 보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그래도 사진도 자주 찍어서 보내고, 자주 메일 보낼 수 있도록 노력해볼게. 그러니까 보고 싶어도 조금만 참아. 알았지?
이제 바로 가부몬한테 가봐야겠어. 아무래도 가부몬한테도 낯선 곳이니까, 내가 같이 있어줘야 할 것 같아. 다음에 또 메일 보낼게.
사랑해.
메일을 끝맺음을 하고 나서도, 두 번은 더 정독한 후에야 야마토는 전송 버튼을 보내고는 드러눕다시피 의자에 기댄다. 편지를 한두 번 써본 것도 아닌데, 괜히 기가 다 빨려버렸다. 아니, 음, 기가 빨렸다기 보다는,
“소라가 좋아할까봐 걱정돼?”
“아, 깜짝이야.”
대체 언제 돌아왔는지, 의자 바로 옆에 서서는 저를 향해 웃고 있다.
“언제 왔어?”
“조금 됐어. 소라한테 메일 보내고 있었지?”
“어어. 이렇게 일찍 끝날줄 알았으면 그냥 계속 같이 있다가 오는 건데.”
“아냐, 괜찮아. 생각보다 금방 적응했는걸.”
“그래도 미안해. 같이 있어주는 쪽이 더 좋았을텐데.”
“괜찮다니까―”
가부몬은 연신 괜찮다고 말하며 앉아있는 야마토의 무릎 위에 얼굴을 올리자, 야마토는 그런 가부몬의 털을 가만히 만져준다. 처음에는 애완 강아지냐며 싫어했던 야마토지만, 어느 순간부터 야마토를 안심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되었다.
“소라는 좋아할 거야. 야마토가 보낸 메일이니까.”
“그렇겠지? 메일 절 보냈겠지?”
“그럼―”
그렇다면 다행이고.
씨익 웃어 보이며, 야마토가 몸을 일으켜 의자에 바로 앉는다. 시작 버튼을 눌러 컴퓨터 전원을 종료하고, 모니터도 끄지 않고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시간은 있지만, 조금 급해서 말이야.
일단, 식당에 가서 밥부터 먹자. 우리 점심도 제대로 안 먹었잖아? 여기 건물 안에 어떤 게 있는지도 둘러 보고. 편의점이라도 있겠지? 가부몬 네가 좋아하는 과자 많이 사서 쟁여놓자. 그리고 바깥에도 나가보자. 소라한테 편지를 쓸 편지지도 사고, 우체국도 찾아보자. 손편지를 써주면 더 좋아할 거야. 너에게 조금 더 어울리는 내가 되기 위해서, 열심히 살고 있어.
아, 소라 보고 싶다.
여기 온지 일주일도 안 됐거든―
그치만 보고 싶은걸 어떡하냐.
그렇게 보고 싶으면 일본에 다녀 와.
그럴까?
그렇지만 소라는 열심히 훈련 받는 야마토를 더 좋아할거야―
아, 너무하네 가부몬!